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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의 한마디
게임시장, 아는만큼 보인다.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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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쥐도새도모르게 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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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4월 13일
1997. 12월 출시 : 판타랏사, 소프트맥스
그러니깐 년수를 헤어리자면 14년전이다. 14년전 당시 나는 만화스토리 작가가 되겠다고 대본소 만화 재료 작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김환철 선생님에게서 많은 부분들을 배우기도 했고 근 반년동안 작업해서 받은 첫 고료 30만원도 지금 돌이켜보면 아련한 추억이다. 그후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가 제록스일부터 시작해서 아마게돈 제작사무국에 들어가기까지 내 머리속에 단 하나의 주요 관심은 이른바 '죽이는 게임스토리' 였다.
당시의 게임 스토리들은 내 자신이 추구하는 스토리의 질에 한없이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완성도 낮은 스토리들의 게임이 시장에 나올수록 내 스스로 언젠가는 제대로 된 스토리의 게임을 내손으로 써보이고 말겠다는 의지를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나는 직장을 KRG로 옮기면서 내가 맡은 일들을 주변 사람들의 예상보다 빠르게 처리해 나갔었다. 아마 이런 점이 주변에서 나의 기대치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져서 드로이얀 넥스트가 끝나고 열혈강호를 주도적인 입장에서 계약을 성사키게 된 것이 회사내의 나의 발언권이 커지게 만들어 주었다.
맨처음에는 박지훈 사장이 드로이얀 2의 제작 총괄 및 기획 총괄을 맡게 되었었다. 하지만 경영을 하면서 또 회사의 대표 업무 특성상 회사 내부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업 관계자들과 미팅을 하게 되는 외부 업무 빈도수가 잦아지고 그에 따라 기획이나 제작쪽에 신경을 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드로이얀 2의 덩치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드로이얀 2는 드로이얀 넥스트가 종료되기 이전부터 따로 진행이 되던 프로젝트였었고 계속되는 일정의 연기와 불어나는 덩치로 인해 프로젝트는 오리무중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갔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자신이 작업하고 있는 캐릭터가 주인공 캐릭터인지도 모른채 작업을 해야만 했으며 배경 쪽에서는 그래픽 디자이너별로 컬러 컨셉이 맞지않는 작업물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 모두가 제작관리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것들.
난 사장실로 들어가 사장과 담판을 했다.
"사장님이 맡고 있는 제작총괄직, 저에게 주십시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사장의 답은 간단했다.
"좋아. 네가 맡아서 해봐라."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제작총괄을 맡게 된 프로젝트가 바로 드로이얀2 다.
내가 총괄직을 맡기 전, 드로이얀 2의 실질적인 기획총괄은 극장판 애니메이션 아마게돈에서 메카닉 디자인을 맡아 같이 일한 바 있던 이훈수였다. 그 때 드로이얀 2의 볼륨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사내에서는 파트1과 파트2를 따로 출시하자는 말도 있었다. 또 시네마틱 RPG라는 괴상한 별명을 얻게한 결정적인 요인, '어마어마한 동영상 씬'들의 작업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작업 분량을 지니고 있었다.
나역시 14년전부터의 꿈이라면 꿈인 '죽이는 게임 스토리'를 만드는데 최대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동영상 및 이벤트 성우 음성 지원'을 넣었으며 당시 시나리오를 맡고 있던 두 사람은 거의 매일 시달릴 정도였다. (결국 스토리 장치적인 면의 동기 부여나 인물 대비를 강화하기 위한 캐릭터 구도가 바뀌게 되었었다.)
우리의 예상보다 동영상은 너무나 수준 높은 퀄리티로 나와주었다. (지금보면 엉성할지 몰라도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수준의 동영상이었다.) 드로이얀 넥스트때 가능성을 보여줬던 류기덕이 이번엔 제대로 된 동영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드로이얀 2는 내 기억으로 2번 출시연기를 했다. 방대한 기획량에 맞추어 시스템이나 스토리량을 자르고 편집하고 이어붙히는 일련의 과정속에서 개발팀의 사기가 많이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파트1, 파트2는 합본 형태로 합쳐져서 하나의 패키지로 다시 만들게 되었고 시간에 쫓긴 나머지 게임 시스템적인 면에서 많은 부분들에 제한을 받게 되었다.
실제 드로이얀2의 퀘스트 시스템은 상당히 진보한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을 기획한 사람은 이훈수였다.) 드로이얀2가 출시되고나서 한참뒤에 나온 판타지스타 온라인의 퀘스트 시스템이 바로 드로이얀2의 퀘스트 시스템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흡사하다. 사내에서는 판스온에서 우리 게임을 배낀게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였었다.
이벤트 면에서는 상당히 부실한 내용들이 많았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울 따름이었다. 실시간 이벤트 스크립트 부분의 지식과 경험을 가진 프로그래머가 없었다는 것. (드로이얀 2는 이벤트가 중요한 부분이었다.) 또한 제작관리 면에서도 부실한 부분들이 나오게 되어 KRG 모니터 요원을 선발하여 진행하게 된 QA 쪽에서도 '진행이 되지 않는 버젼의 게임으로는 더 이상 테스트 불가'라는 진언을 받기도 했다. 당시 모니터 요원중 몇몇 사람들은 나중에 KRG에 입사하게 된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게임이 출시되고 이 게임은 7,000 카피도 시장에서 소화하지 못하게 되었다.
회사로서는 전작의 성공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드로이얀이라는 브랜드를 믿고 투입한 막대한 자원이 순식간에 리스크로 돌아오게 된 순간이었다. 실패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선 이 게임은 16비트 게임으로 저사양 PC에서는 작동이 느리다는 기술적인 결함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주인공의 경우 20,000여장에 달하는 막대한 프레임의 캐릭터 스프라이트 크기와 CD 1장 분량의 고화질 동영상등 하드웨어적인 진입 장벽이 있었다. 또 게임 플레이적인 환경으로는 밸런스에서 커다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사이오닉과 아이템등으로 인해 초반부에는 어렵고 뒤로 갈수록 매우 쉬워지는 다소 묘한 게임 밸런싱이었다. (이 밸런싱 작업은 박지훈 사장이 자청하였기 때문에 본인에게 담당하도록 하였었다. 당시 드로이얀 1의 경우에도 밸런싱을 잘 했었기에 이번에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예측은 결국 모호한 기대였었던 것이다.대표로서 회사 운영과 개발 실무 둘 다 잘하기에는 애시당초 무리였다.) 뭐니뭐니해도 우리나라에서 SF 라는 소재를 가지고 성공하기엔 'SF는 낯설고 생소해'라는 통념이 매우 강했다.
14년 만에 게임 스토리에 대한 꿈을 접은 이유는 어느 웹진의 드로이얀 2 리뷰를 보고 나서 였다.
그 웹진에서는 드로이얀 2의 리뷰 끝자락에 분명히 이렇게 드로이얀 2를 총평했다.
"개발사는 드로이얀 2를 시네마틱 RPG라는 장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필자가 드로이얀 2를 하면서 느낀 점은 <영화같은 게임>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진짜 영화> 한편을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이 드로이얀 2의 실패를 통해 게임이라는 미디어를 올바르게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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