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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의 한마디
게임시장, 아는만큼 보인다.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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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3월 23일
1997. 12월 출시 : 판타랏사, 소프트맥스 서풍의 광시곡을 마치고 나서 직장을 옮겼다. 나로서는 '들어가기 어려운' 소프트맥스에서 내 발로 나온 것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당시 프로그래머로서 부족한 나의 역량에도 불구하고 장래성을 보고 믿고 뽑아 준 소프트맥스의 現 조영기 개발이사님에게는 지금도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왜 그 곳을 나왔는가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다. 난 지금도 서로의 가치관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회사의 직원이 소속된 회사의 가치관을 공감할 수 없다면 애사심같은 것도 있을 수 없으며 그런 것들로 내 진심과 정열이 낭비되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못한 일일 것이다. 직원으로서 회사를 생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직함과 연봉이 척도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느꼈었다. 어쨌거나 난 소프트맥스를 내 발로 나왔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만 했다. 특별히 어떤 직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도 고민도 없었다. 그냥 당시 생각으로는 마스터 기간이 지난 뒤라서 조금은 쉬고 싶었고 당시 결혼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한달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던 차에 게임스쿨 1기수 선배인 박지훈 사장에게 놀러갔다. (난 LG게임스쿨 8기였고 그는 LG게임스쿨 7기였다.) 박지훈 사장은 잘 알다시피 드로이얀이라는 게임을 개발한 KRG소프트의 대표였다. 당시 KRG소프트는 사무실 평수도 4평도 안되는 곳에서 5명의 개발 식구들이 모여있던 조그만 규모의 개발사였다. 그때 드로이얀은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욱 알려진 게임이었고 해외 수출 실적이 좋아서 회사로서는 직원들을 더 뽑아 조금 넓은 개발실로 옮기려고 하던 차였다. LG게임스쿨 시절부터 박지훈 사장은 이수과정 끝나면 자기회사로 오라고 몇차례 농담조로 이야기는 했었지만 솔직히 내가 그 KRG로 정말 들어가게 될 줄은 몰랐었다. 박지훈 사장은 나하고 같이 일하자며 이렇게 말했다. '소맥보다 10만원 더줄께! 같이 게임하나 만들어보자!' 이 업계에 있다보면 박지훈 사장에 대해 주변 사람들 말이 많다. 이런 저런 말들이 많고 그 것들이 다 루머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확언할 수 있는 것 하나는 그 사람은 '인간적'이라는 부분이 매력인 듯 하다. 인간이 인간답다는 것이 결코 장점만은 아니겠지만 그 사람은 내겐 그렇게 보였고 지금도 그렇게 보고 있다. (돌아보면 박지훈 사장과 5년을 같이 일을 했다. 가장 어려운 시절부터 좋았던 시절까지...) 이야기가 많이 샜지만 어쨌거나 드로이얀 넥스트는 그렇게 해서 내가 맡게 되었다. 기존 드로이얀의 세계관을 이용하여 간단하게 아케이드성 게임을 만들자는게 박사장의 계획이었고 그에 따른 실질적인 제작을 맡게되었다. 당시 KRG에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4명의 개발팀원을 추가로 뽑게 되었다. 프로그래머 1명과 그래픽 디자이너 3명이었다. (기획자는 나중에 아르바이트로 채용되었다.) 부끄러웠던 것은 드로이얀 넥스트는 기획서가 없는 게임이었다는 점이다. 문서라고 해봐야 몇페이지도 안되는 것이었었고 사내에 전문 기획자가 없다보니 여러가지 난항에 부딪히게 되었다. 샤이니에서 개발한 어스웜짐의 포스트모텀을 보면 고의로 문서없이 개발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도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이런 개발 형태는 상식과는 거리가 먼 이른 바 삽질의 연속이었다. 다만 회사로서는 드로이얀 넥스트를 통해 능력있는 그래픽 디자이너를 영입하게 된다. 동영상 제작을 담당했던 류기덕(現 위메이드 개발이사)이었는데 그를 통해 차기작인 드로이얀2 는 '시네마틱 RPG'라는 장르명을 얻게 된다. (드로이얀2 이야기는 차후에 하도록 하자) 개발팀 전체가 모여서 기획회의를 해야만 했고 그러면서 수많은 수정과 변경을 해야만 했던 드로이얀 넥스트는 그렇게 만들어져 갔다. ![]() 이 게임은 나에게 두가지를 빼앗아 갔다. 하나는 내 신혼이었다. 엔진같은 것들이 다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내가 도울 일은 뒷마무리 정도가 될 것이다라는 박지훈 사장의 처음 말과는 달리 내가 확인한 것은 아무것도 되어 있는 것이 없는 드로이얀 넥스트였다. 하다못해 제목도 결정된 것이 없었다. 당시 이 게임을 맡은 프로그래머는 LG 1기 후배인 LG 9기생 프로그래머였고 상황은 내 예상보다 더 나빴다. 업무 분장에 있어서 시간이 지날 수록 내가 맡게 되는 부분들이 더욱더 많아졌으며 거의 나중에는 7:3 정도로 업무 분장에서 업무량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해야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없다면 결국 야근밖에 답이 없었다. 당시 신혼이던 나는 3일 철야, 하루 귀가라는 강행군을 해야만 했었고 그토록 시간에 쫓기며 구현된 결과물은 사실 그 퀄리티 역시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고싶은 마음은 게임의 질이 높아야하는데 결과물이 그 것을 못따라주었다. 이 게임이 나에게 뺐은 다른 하나는 바로 미래였다. 드로이얀 넥스트가 출시되고 3천카피 초도물량조차 소화가 되지 않자 회사로서는 자금압박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박사장은 드로이얀 넥스트를 출시하고 내가 정말 만들고 싶어하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어 보자고 했었으나 내 스스로 회사의 미래를 위해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따위를 만들수 없었다. 예전에 만화스토리 작가 활동을 하던 시절의 인맥을 통해 난 이른바 '안정적인 히트작'이 될 수 있는 게임의 소재를 KRG 박지훈 사장에게 주어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 '열혈강호' 였다. 사실 열혈강호의 PC게임화는 소맥 시절에도 있었다. 내가 주최로 최연규씨와 극진이형(잘알다시피 극진이형은 열혈강호의 스토리작가이다)과 성혁이 형을 사적인 자리에서 소개까지 시켜준 적도 있었으나 최연규씨는 인사 정도로 끝내고 싶다며 극구 열혈강호의 게임화에 대해 비관적으로 나섰다. 자기 역시 스토리를 쓰는 작가로서의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되어 당시에는 그냥 소개정도로 넘어가 주었지만 이번 KRG때는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열혈강호를 반드시 게임으로 만들어야만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박지훈 사장을 강하게 설득하였다. 그렇게하여 열혈강호는 KRG와 1999년에 열혈강호에 대한 라이센스 계약을 하게 된다. (사실 이 계약 때문에 난 양재현 작가 앞에서 무릎을 끓어야만 했다.) 돌이켜보면 이 드로이얀 넥스트를 조금만 더 잘만들어서 시장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난 열혈강호를 KRG에 팔지 않았을테고 아마 KRG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 열혈강호를 만들게 되었을 것이다. |